노벨상 ‘별난 물질’, 이론을 넘어 현실로
노벨상 ‘별난 물질’, 이론을 넘어 현실로
  • 한국과학경제
  • 승인 2019.10.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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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선 위상물질 측정기술 개발··· 양자소자 혁신 기대
연구에 활용된 위상물질 기반 나노역학소자의 모습. 가운데 기타 줄처럼 고정돼있는 부분이 나노선(nanowire)이며 나노선의 공진을 통해 위상물질의 상태를 파악했다.
연구에 활용된 위상물질 기반 나노역학소자의 모습. 가운데 기타 줄처럼 고정돼있는 부분이 나노선(nanowire)이며 나노선의 공진을 통해 위상물질의 상태를 파악했다.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 책임연구원(아래)와 김지환 박사후연구원.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 책임연구원(아래)와 김지환 박사후연구원.

 

한국과학경제=박정민 기자】 #. 2016 노벨물리학상은 데이비드 사울리스(워싱턴대), 던컨 홀데인(프린스턴대), 마이클 코스털리츠(브라운대) 교수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위상학(topology)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 ‘별난 물질(exotic matter)‘로 불리는 위상물질(topological matter)을 세상에 알렸다. 그로부터 3년, 전 세계는 이론에만 존재하는 이 별난 물질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연구로 뜨겁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과 독일 쾰른대학교 연구팀은 일반 금속이나 반도체 등과 다른 특성을 지녀 ‘별난 물질’로 불리는 위상물질의 활용성을 높일 측정기술을 개발했다.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 책임연구원과 쾰른대 김건우 연구위원 공동연구팀은 머리카락 1000분의 1 굵기인 나노역학소자의 공진 주파수를 분석하여 위상물질의 특성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성과는 위상물질 기반 나노역학소자 연구의 세계 최초 결과로서, 위상물질이 이론을 넘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의 기반인 양자소자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상학(topology)은 오랜 시간 수학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에는 물질의 위상학적 상태에 대한 발견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하는 등 물리학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위상학적 상태를 가진 위상물질은 ‘구멍의 수’로 상태를 구분한다. 찰흙으로 만든 공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위상학의 세계에서 구멍이 없는 공과 한 개 있는 도넛은 마치 고체와 액체처럼 다른 상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지는 도넛과 다르게 보이지만 구멍이 1개이므로 위상학적으로는 같다고 표현한다.

위상물질로 제작한 전자소자는 온전한 ‘양자 결맞음’ 상태를 가질 수 있어 양자소자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극히 이론적인 개념이었던 위상학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위상물질의 특성을 완벽히 이해해야만 한다.

연구팀은 수백 나노미터(nm) 굵기의 위상물질 나노선 기반 역학소자를 제작, 위상물질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전자상태밀도에 대한 신개념 측정 기술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위상절연체인 비스무스셀레나이드(Bi2Se3) 화합물로 나노선을 만든 다음, 금속 박막 전극에서 수십 나노미터 떨어져 진동하도록 해 전극을 통해 역학적 공진을 유도 및 측정했다.

나노역학소자는 나노선의 양쪽을 고정하고 띄운 형태로 기타 줄을 연상시킨다. 기타 줄을 튕기면 공진하듯 나노선도 공진을 발생시킬 수 있고 이 때 물질의 위상상태, 즉 ‘구멍의 수’를 알아낼 수 있다.

극저온에서 나노선 표면의 전자는 양자 결맞음이 잘 유지되어 양자간섭을 보인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위상물질의 전기적 특성은 물론 상태밀도에 따른 공진주파수 변화까지 동시에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와 같은 실험결과가 나노선의 진동과 그 표면에 존재하는 전자계의 상호작용에 의한 양자현상에 기인함을 이론 계산을 통해서 명확히 밝혀냈다.

KRISS 서준호 책임연구원은 “대표적인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까지 실리콘이라는 반도체 물질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렸다”며 “이번에 개발한 역학적 공진 기반 측정기술 또한 큐빗, 스핀트로닉스 소자 등 미래 양자소자에 활용할 수 있는 위상물질의 특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KRISS와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 – IF: 11.878)에 10월 게재되었다.

■ 용어설명

*나노역학소자(=나노역학계, nanomechanical systems) : 기계적 진동을 신호처리, 센싱 등에 활용하는 나노 공정으로 제작한 소자.

*양자 결맞음(quantum coherence) : 양자들의 파동이 같이 가는(결이 맞는) 현상. 결맞음과 반대되는 의미로는 결깨짐(decoherence)이 있는데, 결깨짐이 일어나면 간접 현상 등 양자역학적 성질을 잃게 되며 위상물질은 결깨짐에 강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전자상태밀도(electron density of states) : 하나의 에너지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 물질 내 전자의 개수.

*위상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 : 물질 내 전자 구조가 위상학적 특성을 보유, 고체의 표면에서만 전도가 일어나고 내부에서는 절연 상태를 유지하는 물질.

*큐빗(qubit) : 양자정보처리의 단위. 디지털 기술인 기존의 ‘비트(bit)’는 '0'과 '1'의 상태를 가지지만, 큐빗은 양자의 중첩 현상으로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어 양자기술의 연산 단위로 사용한다.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 전자의 회전‧자전(spin)을 활용하는 전자 소자 기술. 현재의 메모리반도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정보처리와 정보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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