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폭탄인 ‘진천뢰‘, 임진왜란 때 왜군 격퇴 핵심적 역할 첨단 무기
전통 폭탄인 ‘진천뢰‘, 임진왜란 때 왜군 격퇴 핵심적 역할 첨단 무기
  • 한국과학경제
  • 승인 2019.11.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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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 보다 5배 이상 큰 폭발력과 살상력을 갖춘 직경 33cm의 대형폭탄
복원한 세종때의 ‘총통완구’
복원한 세종때의 ‘총통완구’
매화점화법2(진천뢰발사)
매화점화법2(진천뢰발사)
질녀신기전
질녀신기전

 

한국과학경제=최경제 기자】 임진왜란 당시 육전에서 사용한 전통 폭탄인 ‘진천뢰‘는 비격진천뢰 보다 5배 이상 큰 폭발력과 살상력을 갖춘 직경 33cm의 대형폭탄(직경 33cm, 무게 117근2냥;72kg)으로 임진왜란때 왜군을 토벌, 격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첨단 무기였음을 밝혔졌다.

신기전과 각종 화포, 거북선 등을 연구 복원한 고화기전문가 채연석 박사(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11월 15일 전북 고창읍 ‘고인돌박물관’에서 개최된 ‘비격진천뢰 보존 및 활용사업 학술대회’에서  ‘임진왜란에 사용된 완구와 진천뢰의 구조연구’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채교수는 임진왜란때 우리는 ‘진천뢰’와 ‘비격진천뢰’를 함께 사용했는데 ‘진천뢰는 대완구로 발사했고 ’비격진천뢰‘는 중완구를 이용한 것으로 1635 편찬된 ’화포식언해‘에 기록되어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1694년 편찬된 『강도지(江都志)』, 강화도 지리지에도 강화도에 ‘비진천뢰’ 62좌, ‘올(兀)진천뢰’ 91좌등 2종류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일성록』, 정조 21년(1797년) 8월 18일자, 수원에서 새로이 ‘수철진천뢰(水鐵震天雷) 5좌, 비진천뢰(飛震天雷) 100좌’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천뢰의 구조

화포식언해의 설명에 의하면 ‘진천뢰는 철로 주조하여 둥글게 몸통을 만드는데 무게가 113근(1근 600g일때, 67.8kg), 철로 만든 뚜껑이 10냥(375g)이고 폭발을 지연시키는 주격철(柱激鐵)통의 무게가 1근8냥(900g)이다.

주격철의 중간에 4개의 구멍이 있어서 이곳으로 점화선을 내어 몸통속의 화약을 폭발시킨다. 화약을 5근(3kg) 능철(마름쇠) 30개를 넣는다.’ 진천뢰의 무게는 117근2냥(70.2kg)이다.(그림1)

■진천뢰의 위력

화포식언해‘에 의하면 ’진천뢰‘는 ’비진천뢰’ 보다 전체 무게는 5.6배 더 무겁고 화약은 5배 더 많이 넣었고 능철도 30개를 넣었으므로 폭발력과 살상력이 5배 이상 클 것이다. 따라서 진천뢰가 왜군을 토벌하고 격퇴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무기였음이 처음 밝혀졌다.

‘향병일기‘에 “왜적을 토벌하는 계책으로 진천뢰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다”, “진천뢰는 효과가 있어 왜적의 간담을 벌써 서늘케 하니 지극히 기쁘지만, 안동의 진영에는 3개뿐인데다 화약이 바닥나 수송할 수가 없다”고 해 진천뢰의 우수한 효과와 성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진천뢰의 발사방법

임진왜란 때 진천뢰는 대완구에서 발사되었지만 현재 관련 유물은 남아있지 않다. 세종때 총통완구(무게 74근의 석환 사용, 그림 2, 3)를 기준으로 설계해본 대완구(무게 74근의 석환 사용, 그림 4)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진천뢰를 발사할 때 빨리 점화 되어서 발사장소 즉 대완구 속에서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주화(신기전의 1448년 이전 명칭)를 이용하여 점화를 하든지 안전 곳에 숨어서 점화선을 길게하여 발사를 하였다. 주화를 이용하여 점화, 발사하는 방법(그림 5) <1815년 편찬된 『융원필비』의 ‘매화법’에도 주화를 이용하여 점화를 하였음(그림 6)>

■ 질려포통과 진천뢰

세종때도 사용했던 나무통 폭탄인 질려포통은 대, 중, 소가 있었다. 질려포통은 나무통속에 ‘지화’(로켓)와 소형종이 폭탄인 ‘소발화‘를 묶어 넣고 그 속에 화약과 능철, 쑥잎을 넣었던 폭탄임. 손으로 적의 배에 던지거나 성위나 산위에서 아래로 굴려 폭발시켰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 29년(1447년)에 따르면 “이운(二運)이 중주화(中走火) 8백 개, 소발화(小發火) 8백 개(그림7), 소주화(小走火) 1천 5백 개이고, 삼운(三運)이 평안도(平安道)에 직상화(直上火) 2천 개, 화전(火箭) 3백 52개, 대주화(大走火) 60개, 소질려포(小蒺藜砲) 36개(그림 8), 중주화(中走火) 2천 2백 70개, 소주화(小走火) 3천 3백 40개, 함길도(咸吉道)에 직상화(直上火) 1천 개, 화전(火箭) 1백 75개, 대주화(大走火) 30개, 소질려포(小蒺藜砲) 18개, 중주화(中走火) 1천 1백 30개, 소주화(小走火) 1천 6백 60개이다.

세종실록의 기록(세종 29년)에 보면 중주화 800개와 중주화에 폭탄으로 부착하는 소발화 800개를 함께 보냈다. 대주화(1448년부터 대신기전 명칭사용) 60개와 같이 부착하여 사용할 소질려포통 36개를 같이 보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소질려포통을 대신기전에 부착하여 발사함으로써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여 효과를 봄. 이 원리를 이용하여 대완구로 발사할 수 있도록 질려포통을 쇠로 만든 것이 진천뢰임을 알 수 있다.

채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는 거북선과 판옥선의 대형함포를 이용 왜선을 파괴, 격침시켜 승리하였고 육전에서는 진천뢰, 비진천뢰의 엄청난 폭발력과 살상력을 이용 왜적을 토벌하고 사살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음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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